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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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6. 12. 16:36
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경주 역사관광-통일신라의 기막힌 정원
경주의 동궁과 월지는 674년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룬 직후 조성된 것이며 통일신라의 대표적인 정원유적입니다.
안압지에서는 신라조경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며 현재 건물을 다 복원하진 않았지만 연못과 어우러진 운치 있는 곳이지요.
남아있는 기록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이곳은 동궁과 월지로서 왕과 신하들이 모여서 연회를 하는 큰 연회장이기도 하며 외국 사신이나 큰 손님을 영접하는 영빈관으로서 사용된 곳입니다.
발굴조사에서 밝혀진 이곳의 많은 청동유물과 기와미츠 작은 배까지 확인함으로써 당시 찬란한 신라문화를 오늘에 재 조명해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동궁과 월지는 바다를 상징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못 안의 3개의 섬은 신선 사상으로 삼신산을 나타낸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 안압지(雁鴨池)를 조성한 것은 신라 문무왕 때이며 정원 형태로 만들었으며 신라 인공연못으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직후인 문무왕(文武王) 14년(674년)에 황룡사 서남쪽 372미터 지점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큰 연못 가운데 3개의 섬을 배치하고 북쪽과 동쪽으로는 무산(巫山)을 나타내는 12개 봉우리로 구성된 산을 만들었는데 동양사상의 신선 사상을 상징한 것이라고 합니다.
인공섬은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동물도 길러 잘 조성한 신라의 원지(苑池)입니다.
이 못은 왕궁에 부속된 연못이며 서쪽에는 별궁 임해전이 있었고 동쪽과 북쪽은 굴곡이 심한 곡면을 이루고 있었으며 연못 안에는 3개의 섬이 있는 형태인데 복원된 것입니다.
안압지라는 명칭은 조선 초기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과 동경 잡기 등에 언급돼있다고 합니다.
1980년 안압지에서 발굴된 토기나 파편등의 유물로서 이곳이 신라시대에 월지(月池)라고 불린 곳으로 확인된 후로 더 이상 안압지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신라 왕궁 반월성(半月城)과 인접해서 임해전의 이름도 월지궁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이 오랜 세월에 폐허가 되고 연못에는 기러기와 오리들이 날아들어서 이 광경을 본 당시 조선의 묵객들이 안압지(雁鴨池)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안압지(雁鴨池)로 된 것이며 원래의 명칭은 동궁과 월지이지요.
삼국사기에는 동궁을 임해전(臨海殿) 즉 바다에 붙은 건물이라고 부른 기록이 있어 안압지는 내륙에 만든 바다를 상징하는 호수로 보는 것입니다.
<이 글은 안압지 현지의 동영상 해설을 참고로 해서 포스팅한 것입니다.>
통일신라의 기막힌 정원 동궁과 월지(東宮과月池)-안압지(雁鴨池).
동영상 보기: http://youtu.be/bf_SWby6 jyE
동영상 보기: http://youtu.be/bf_SWby6 j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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