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泣斬馬謖

읍참마속 泣斬馬謖



고사성어 읍참마속-泣斬馬謖


읍참마속(泣斬馬謖)은 한자어 대로 읍(업드리고)하고 울며 마속(馬謖)의 목을 베었다는 뜻이지만 ,이 한자어가 탄생한 연유를 알아보면 깊은 아픔이 느껴지는 고사성어임을 알 수 있다 .


촉나라(蜀)의 제갈량(諸葛亮)이 조조와 싸워서 이제막 승기를 잡고 중원 진출을 도모 하려든 때였다.

중요하고 큰 전투를 해야하는 시기에 후방이긴 하지만 중요한 군량수송로
(軍糧輸送路) 중에서도 요충지인 가정(街亭:한중의 동쪽지역)을 수비 해야 하는 것이 염려가 된다.

조조의 노장 사마의(司馬懿)가 이끄는 군대를 대적 해야하는 임무라서 신중을 기하려 한다.

당시 용맹하고 충성스런 젊은 장수 마속(馬謖)이 이곳을 지키겠노라고 간청한다.

제갈량은 영 맘이 놓이지는 않치만 목슴을걸고 지키겠노라고 간청하는 뛰어난 젊은장수 마속(馬謖)에게 임무를 맞기고 만다.


제갈량(諸葛亮)은 마속(馬謖)에게 전술대로 산기슭의 협로(峽路)를 가만이 지키기만 하라고 명령하고 떠난다.


그러나 의기충천한 마속은 적을 유인하여 역공해서 큰전과를 올리겠다는 욕심을 내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고 산 위에다 진을 친다.

유리한 고지에서 쫒기듯 하면 산기슭을 기어 올라오는 조조군대를 싸워 이긴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산위로 올라가서 진을 치고 기다리지만 노련한 사마의(司馬懿)가 산꼭대기로 마속(馬謖)을 잡으러 올라가지 않는다.

제갈량이 마속(馬謖)에게 지키라고 한 산기슭에 도리어 사마의(司馬懿)가 진을치고 산아래를 완전히 포위해 놓고 그냥 기다리기만 한다.

마속(馬謖)의 군대는 몇일도 못가서 식수가 떨어지고 병사들은 목말라 지쳐서 지리 멸렬 할 위기에 빠진다.

그때사 마속(馬謖)은 제갈량의 전술을 이해 했지만 늦었고 앉아서 죽을수가 없음으로 무리하고 위험한 탈출 전투를 벌려야했고 이 과정에서 마속(馬謖)자기와 병사 몇기만 살아남는 대패 를  하고 만다.

 

마속의 어이없는 전투 패배로 후방의 군량미 보급로가 차단되어 제갈량은 전군(全軍)을 한중(韓中)까지 후퇴 시키지 않을수 없어지고 자신도 마속에게 중책을 맡겼던 것을 크게 후회한다.

제갈량은 군율을 어긴 그를 참형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픈마음으로 
"마속은 정말 아까운 장수다."고 외쳤고.

사사로운 정 때문에 군율에 따르지 않을경우 마속이 지은 죄보다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생각으로 형을 집행한다.
특히 아끼는 사람일수록 법에 따라서 대의(大義)를 세워야 나라의 기강이 선다고 말한다.

  

마속(馬謖)이 처형장으로 끌려 갈 때 제갈량은 도포자락으로 얼굴을 감싸고 마룻바닥에 엎드려서 크게 울었는데 ,...


이 일을 후세 사람들이 너무나 가슴아프고 안타깝지만 벌을 줘야하는 제갈량의 일을 말 할때 읍참마속(泣斬馬謖)즉 울면서 마속을 처형했다 라고 표현하게 된다.

 

이 내용은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이며 이 어처구니 없는 마속의 실수로 인해서 제갈량과 촉나라는 대 중원(中原) 진출을 포기 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읍참마속 泣斬馬謖읍참마속 泣斬馬謖



제갈량이 아끼는 마속을 죽이는 심정에 비유해서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한자어가 탄생한 것인데 가끔 그렇지 않고 법적 처리하면서 위로하는척 하기 위해서 읍참마속(泣斬馬謖)한다고 표현 한다면 잘못된 인용일 것이다.


읍참마속 泣斬馬謖읍참마속 泣斬馬謖



마속(馬謖)

중국 촉한의 장수, 자:유상
형주 양양군 의성현 사람. 제갈량의 신임을 받는 장수지만 가정 전투에서 명령불이행 참패해서
제1차 북벌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책임을 물어 처형당함.이때 사랑하는 신하를 가슴아파 울면서 법대로 처단하여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읍참마속이 유래하게 된다. 


출생: AD 190년, 중화인민공화국 샹양 시

사망 날짜/장소: AD 228년

형제: 마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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